“긍휼히 여기소서.”
교회에서 가장 자주 드리는 기도 가운데 하나입니다. 너무 익숙해서, 이 말이 어디서 왔는지 물어볼 틈이 없었습니다.
오늘의 원어
רַחֲמִים
라하밈
태에서 나온 사랑
히브리어 라하밈은 뜻밖의 곳에서 왔습니다. 어머니의 태를 가리키는 말, 레헴입니다. 긍휼은 머리의 단어가 아니라 몸의 단어였습니다. 자식이 아프면 제 속이 먼저 끊어지는 어머니의 사랑. 설명하기 전에 앓는 사랑입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 시편 103:13,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시인은 아버지를 예로 듭니다. 그런데 쓰는 단어는 태의 단어입니다. 아버지의 듬직함과 어머니의 애끓함이 한 문장 안에 겹쳐 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그만큼 크고, 그만큼 가깝습니다.
바로 다음 절이 그 이유를 말합니다.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 103:14). 우리가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 그분은 잊지 않으십니다.
여기 하나님의 성품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멀리서 판정하시는 분이 아니라, 제 몸처럼 앓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먼지인 줄 아시기에, 먼지를 품으십니다.
그러니 오늘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할 때, 우리는 낯선 재판관에게 호소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를 품고 계신 분께 안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을, 그렇게 품고 계십니다.
함께 묵상할 질문
- 나는 긍휼을 구하면서도 하나님을 멀리 계신 재판관처럼 그려 오지 않았습니까?
- 오늘 내가 라하밈으로 — 몸으로 앓는 마음으로 — 품어야 할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말씀 원액」은 아침마다 새로운 말씀 원액 한 방울 — 원어 한 단어로 하루를 여는 짧은 묵상입니다. (5편 · 라하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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