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제4문 — 두 계명, 한 사랑

요즘 우리는 옆집 사람을 무엇으로 알고 있을까요? 얼굴보다 와이파이 이름으로 먼저 압니다. 휴대폰을 켜면 윗집, 아랫집, 옆집의 와이파이 이름이 줄지어 뜹니다. 그런데 정작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이름은 모릅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몇 년을 살아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가까운데 이렇게 먼 사람을 성경은 한 단어로 부릅니다. 이웃입니다.

율법이라고 하면 많은 분이 ‘하지 말라’로 가득한 긴 목록을 떠올리십니다. 이상하게도 목록이 길수록 마음이 놓입니다. 목록이 있으면 하나씩 체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체크리스트 앞에서는 제법 괜찮은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요구하시는 것이 목록이 아니라면 어떻게 될까요? 체크 표시로는 끝나지 않는 무언가라면 말입니다.

제3문은 우리의 비참을 하나님의 율법으로부터 안다고 했습니다. 거울이 있으니 이제 물어야 합니다. 그 거울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합니까? 제4문은 바로 그것을 묻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답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 22장 37-40절에서 이를 요약하여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 대답 뒤에는 한 장면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한 율법사가 다가와 시험하여 묻습니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마 22:36). 유대 전통은 율법의 계명을 613개로 세어 왔습니다.1 613개 가운데 하나만 고르라니, 어느 것을 골라도 나머지 612개가 서운해할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가 아니라 둘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덧붙이십니다.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40). 강령으로 옮긴 말에는 걸려 있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2 율법 전체가 두 개의 못에 걸린 옷처럼 이 두 계명에 매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 두 계명을 두 걸음으로 따라가 보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첫째 계명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보고, 그다음에 이웃을 사랑하라는 둘째 계명이 이웃을 어떻게 다시 정의하는지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남은 것이 아니라 첫자리를 원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묻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마 19:16). 마태는 그를 청년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 계명을 하나씩 짚으십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부모를 공경하라,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마 19:18-19). 아마 청년의 얼굴이 밝아졌을 것입니다. 아는 문제만 나왔으니까요.

그가 대답합니다.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마 19:20). 시험지를 다 풀고 손을 번쩍 들어 보너스 문제는 없느냐고 묻는 학생 같습니다. 예수님의 보너스 문제는 이것이었습니다.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마 19:21). 본문은 짧게 적습니다.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마 19:22). 목록은 다 지켰는데, 마음의 첫자리는 내어 드리지 못한 것입니다.

첫째 계명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마 22:37). 모세는 같은 계명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라고 전했습니다(신 6:5).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 사람이 가진 전부입니다. 하나님은 일하고 남은 시간, 쓰고 남은 돈, 지치고 남은 마음을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체크리스트는 남은 것으로도 채울 수 있지만, 사랑은 첫자리를 드려야 시작됩니다.

우리 하루의 첫자리를 생각해 보십시오. 올해 3월 정부가 발표한 조사에서 스마트폰 이용자 열 명 가운데 두 명 남짓이 과의존 위험군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위험군 열 명 중 일곱 명은 스마트폰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3 이 숫자를 남의 이야기로만 들을 수는 없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손이 가는 곳,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 우리 마음의 첫자리를 말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계명을 끝까지 지키신 분이 한 분 계십니다. 청년은 재물을 붙들고 근심하며 떠났지만, 예수님은 정반대 길을 걸으셨습니다.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8:9). 청년이 놓지 못한 것을,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다 내려놓으셨습니다. 아버지께 첫자리를 드린 그 순종이 우리를 위한 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남은 것이 아니라 첫자리를 원하십니다.

이웃은 고르는 사람이 아니라 되어 주는 사람입니다

누가복음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습니다. 한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님을 시험하여 묻습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눅 10:25). 예수님께서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느냐고 되물으시자 그는 정답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눅 10:27). 예수님은 칭찬하십니다.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눅 10:28).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그는 한 걸음 더 나갑니다.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눅 10:29). 말하자면 이웃 명단을 달라는 것입니다. 명단이 있으면 명단 밖의 사람은 사랑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예수님은 명단 대신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던 사람이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눅 10:30).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눅 10:31),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눅 10:32). 두 사람 다 보기는 봤습니다. 보고 나서 길 건너편으로 건너갔을 뿐입니다. 오늘이라면 갑자기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걸음을 재촉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상종하지 않던 사마리아 사람이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상처를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까지 데려가 돌봅니다(눅 10:33-34).

이야기를 마치신 예수님께서 질문을 뒤집으십니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눅 10:36). 율법교사는 내 이웃이 누구냐고 물었는데, 예수님은 네가 누구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물으십니다. 율법교사의 대답이 흥미롭습니다.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눅 10:37). 끝내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말은 입에 올리지 않습니다. 그 이름이 목에 걸렸던 모양입니다. 예수님은 한마디로 끝내십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 10:37).

둘째 계명은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입니다(마 22:39). 여기서 이웃은 내가 고른 친구가 아니라, 내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둘째 계명이 첫째와 “같으니”라고 하셨습니다(마 22:39). 두 계명은 따로 노는 두 과목이 아니라 한 사랑의 두 얼굴입니다.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 4:20). 그래서 바울은 율법 전체를 한 문장으로 묶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 13:10).

우리의 길 위에는 누가 있습니까? 이번 달 공개된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들어온 전화상담이 2만 6천 건을 넘었습니다. 하루 평균 110건 정도입니다.4 위층은 발소리를 모르고, 아래층은 사정을 모릅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사람들이 서로의 소리만 알고 얼굴은 모를 때, 이웃은 소음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이 숫자 밖에 서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비유를 들려주신 예수님 자신이 바로 그 길을 걸으셨습니다. 죄로 쓰러져 있던 우리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지 않으시고, 하늘에서 이 땅으로 가까이 오셨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우리가 이웃이 되어 줄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먼저 우리의 이웃이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웃은 찾는 사람이 아니라, 되어 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번 주에 두 가지 ‘먼저’를 연습해 보십시오. 아침에 눈을 뜨면 휴대폰 첫 화면을 열기 전에, 마태복음 22장 37절 한 줄을 소리 내어 읽으십시오. 하루의 첫자리를 하나님께 드리는 연습입니다. 그리고 이번 주 안에 엘리베이터나 복도에서 만나는 이웃에게 내가 먼저 인사하고, 한 사람의 이름을 물어 기억해 두십시오. 주일 저녁, 그 이름을 불러 기도하면 됩니다. 와이파이 이름 대신 사람 이름 하나를 외우는 한 주가 될 것입니다.

혹시 지금 소리 때문에 마음이 상해 있는 이웃이 있다면, 인터폰을 들기 전에 짧은 쪽지 한 장을 먼저 써 보십시오. 따지는 말이 아니라 내 이름을 밝히는 쪽지입니다.

저는 이웃집 와이파이 이름은 알아도, 그 집 사람의 이름은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도 남은 시간을 드리고는 넉넉히 드렸다고 여긴 날이 많습니다.

청년은 목록을 지켰고, 율법교사는 정답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근심하며 떠났고, 한 사람은 자기를 옳게 보이려 했습니다. 정답은 있었지만, 사랑은 없었습니다.

율법은 사랑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 실패한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먼저 오셨습니다. 부요하신 분이 가난해지셨고, 피하여 지나가지 않고 가까이 오셨습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

그러니 오늘, 남은 것 말고 첫자리를 드리십시오. 길 건너편 말고 가까이 다가가십시오. 먼저 사랑받은 사람으로 일어서십시오.

먼저 사랑받은 사람이, 먼저 다가가는 이웃이 됩니다.

묵상 질문

1. 부자 청년은 계명의 목록은 다 지켰지만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마 19:20-22). 내 하루에서 하나님보다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2. 율법교사는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라고 물었고, 예수님은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라고 되물으셨습니다(눅 10:29, 36). 이 두 질문의 차이는 내가 이웃을 대하는 태도를 어떻게 바꿉니까?

3. 제4문은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두 계명으로 요약합니다. 이 두 계명이 따로 떨어질 수 없는 이유를 요한일서 4장 20절로 설명해 보십시오.

축복과 기도

이제 일어나 세상으로 나가십시오.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 하루의 첫자리를 채우고, 여러분의 발걸음이 길 위의 이웃에게 닿기를 축복합니다.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며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아버지, 남은 것을 드리며 넉넉하다 여기던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하루의 첫자리를 주께 드리게 하시고, 길 위에서 만나는 이웃에게 먼저 다가가게 하십시오.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하게 하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 바빌로니아 탈무드 「마코트」 23b에 랍비 심라이의 말로 전해지는 전통입니다. ↩
  2. 마태복음 22장 40절에서 ‘강령이니라’로 옮긴 헬라어 동사(κρέμαται)는 본래 ‘매달려 있다, 걸려 있다’는 뜻입니다. ↩
  3. 김소연, “스마트폰 사용자 10명중 2.2명 ‘과의존’…많이 보는 숏폼은 ‘유튜브’,” 《머니투데이》, 2026년 3월 27일, https://www.mt.co.kr/tech/2026/03/27/2026032710122977237. ↩
  4. 공미나, “층간소음에 고통…올해만 하루 평균 110건 상담 접수,” 《더팩트》, 2026년 10월 11일, https://news.tf.co.kr/read/ogmeta/2374783.ht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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