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을 판정하던 교회가, 그를 판정했다
— 그레샴 메이첸, 1935

이 글이 답하는 질문

  • 정통 신앙을 가장 치열하게 변호하던 신학자는 왜 교회 재판을 받았는가?
  • 죄목이 ‘이단’이 아니라 ‘불순종’이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 재판정은 왜 교리 변론을 금지했는가?
  • 1935년의 이 사건이 2026년 총회 결의를 읽은 우리에게 묻는 것은 무엇인가?

한눈 요약. 1935년 3월 29일, 미국 북장로교회 뉴브런즈윅 노회의 재판위원회는 신학자 그레샴 메이첸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목사직을 정직시켰다. 죄목은 교리가 아니라 총회 명령 불복이었고, 재판부는 교리 변론 자체를 심리에서 배제했다. 이 글은 그 재판에 이르는 십오 년의 길과, 잣대를 쥔 손도 잣대 아래 있다는 교훈을 읽는다.

죄목이 이상한 재판

지난 글 끝에 약속을 하나 드렸습니다. 이단을 판정하던 교회가 도리어 교회를 지키려던 한 사람을 판정해 버린 사건, 메이첸 이야기를 하겠다고. 약속대로 돌아왔습니다.

1935년 3월 29일, 미국 북장로교회(PCUSA) 뉴브런즈윅 노회의 7인 특별재판위원회가 판결을 내립니다. 유죄. 목사직 정직. 피고인은 당대 미국에서 정통 신앙을 가장 날카롭게 변호하던 신학자 그레샴 메이첸이었습니다. 그런데 죄목이 이상합니다. 이단이 아닙니다. 돈도, 추문도 아닙니다. 서약 위반과 교회 권위에 대한 불복, 곧 불순종이었습니다.

더 이상한 것은 재판 방식입니다. 재판부는 메이첸이 변론의 근거로 삼으려던 것들 — 프린스턴 신학교가 어떻게 재편되었는지, 교단 선교부가 신학적으로 어떤 상태였는지 — 를 모두 심리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문제의 발단이 된 1934년 총회 명령의 적법성 자체도 다툴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교리는 법정 밖에 세워 두고, 절차만 법정 안으로 들인 것입니다. 메이첸은 판결 직후 항변했습니다. 나는 청문 없이 정죄당했다. 무엇이 두려워서 변론을 막았을까요? 답을 찾으려면 십오 년쯤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자유주의를 안에서 통과한 사람

그레샴 메이첸은 1881년 볼티모어에서 태어나 프린스턴 신학교의 신약학 교수가 된 사람입니다. 그의 이력에는 흥미로운 굴곡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 독일 마르부르크에서 당대 최고의 자유주의 신학자 헤르만의 강의를 듣고 크게 흔들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자유주의를 바깥에서 욕한 사람이 아니라 안에서 통과한 사람이고, 그래서 그의 비판은 허수아비 때리기가 아니라 해부에 가까웠습니다.

그 해부의 결과가 1923년의 『기독교와 자유주의』입니다. 논지는 단순하고 과격합니다. 초자연을 걷어낸 자유주의는 기독교의 진보 버전이 아니라, 기독교라는 이름을 빌려 쓰는 전혀 다른 종교라는 것입니다. 책 제목이 이미 판결문입니다. 기독교 ‘와’ 자유주의 —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선언입니다.

서명한 1,274명, 징계는 없었다

당시 교단의 기류는 어땠을까요. 1924년, 목사 1,274명이 서명한 어번 선언이 나옵니다. 성경의 무오, 동정녀 탄생, 대속의 죽음, 육체 부활, 기적 — 이 다섯 교리를 필수 진리가 아니라 여러 해석 이론 가운데 하나로 격하시킨 문서입니다. 주목할 것은 그다음입니다. 서명자 가운데 교단의 징계를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교리를 상대화해도 무사한 교회가, 십여 년 뒤 교리를 지키던 사람을 재판하게 됩니다.

1929년에는 프린스턴 신학교가 이사회 개편 방식으로 재편되어 보수 신학 노선에 물이 타집니다. 메이첸은 프린스턴을 떠나 필라델피아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세웁니다. 건물을 버리고 유산을 챙긴 셈입니다. 그의 짐가방에 든 것은 프린스턴이라는 주소가 아니라 핫지와 워필드의 신학이었습니다.

선교부 사건과 총회의 명령

갈등이 폭발한 지점은 뜻밖에도 선교였습니다. 1932년의 한 보고서(『선교를 다시 생각한다』)는 선교의 목표를 회심이 아니라 문명 간 협력으로 다시 정의하자고 제안했고, 장로교 선교사이자 노벨 문학상 작가였던 펄 벅은 전통 교리에 대한 회의를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교단 선교부는 그를 징계하는 대신 유감을 표하며 사표를 수리하는 것으로 마무리했습니다.

메이첸의 판단은 명료했습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는 선교사에게 성도의 헌금이 흘러가서는 안 된다. 1933년 그는 독립 장로교 해외선교부를 세웁니다. 이듬해 1934년 총회가 명령을 내립니다. 독립선교부에서 탈퇴하라. 권고가 아니라, 불응 시 징계를 전제한 문자 그대로의 명령이었습니다.

메이첸은 거부합니다. 논리는 이렇습니다. 목사 안수 때 나는 성경과 신앙고백에 순종하기로 서약했지, 총회의 모든 결정에 무조건 순종하기로 서약하지 않았다. 총회의 명령이 상위 기준과 충돌할 때, 나의 서약은 상위 기준 편에 선다는 것입니다. 그 거부의 대가가 서두의 재판이었습니다.

유죄, 새 교단, 마지막 전보

1936년 총회는 상소마저 기각합니다. 그해 6월 11일, 메이첸은 소수의 목사·장로들과 함께 새 교단 — 훗날의 정통장로교회(OPC) — 을 창립합니다. 수백만 성도의 교단을 잃고 수천 명의 교단을 얻었으니, 숫자로는 파산이었습니다. 그러나 계보로는 상속이었습니다. 어거스틴에서 칼뱅으로, 청교도에서 구프린스턴으로 흘러온 신앙의 족보가 큰 집에서 작은 집으로 이사한 것입니다.

그리고 반년 뒤인 1937년 1월 1일, 메이첸은 한겨울 노스다코타에서 설교 여행 중 폐렴으로 숨을 거둡니다. 쉰다섯이었습니다. 죽기 전날 동료 신학자 존 머리에게 보낸 마지막 전보는 두 문장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으로 인해 나는 참 감사하다. 그것이 없다면 소망도 없다. 교리는 차갑다고 말하는 시대에, 이 사람은 교리로 따뜻하게 죽었습니다.

잣대 아래 있는 손

이제 지난 글과 이어 보겠습니다. 우리는 2026년 가을 총회의 세 이단 결의를 읽으며 확인했습니다. 이단을 판정하는 일은 교회의 의무이고, 그 잣대는 신앙고백이라는 것. 메이첸 자신이 평생 그 의무를 감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1935년의 재판은 그 의무의 뒷면을 보여 줍니다. 잣대를 쥔 손도, 잣대 아래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날 법정이 실패한 지점은 판정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판정의 근거를 심리에서 추방한 것입니다. 교리를 다루어야 할 자리에서 교리를 금지했을 때 남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 표결입니다. 그리고 표결은 절차를 만들 수는 있어도 진리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4년 만에 뒤집힌 판정도, 6년을 기다린 판정도, 물어야 할 것은 결국 하나였습니다. 무엇에 근거해 판정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 히브리서 4:12,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여기서 하나님의 성품 하나를 봅니다. 이 말씀이 증언하는 하나님은 마음의 생각과 뜻까지 판단하시는 분, 곧 모든 판정의 최종 재판장이십니다. 교회의 판정이 정당한 것은 교회가 재판석에 앉아 있기 때문이 아니라, 교회 자신이 그 말씀의 판단 아래 서 있기 때문입니다. 판정하는 손이 말씀 아래를 벗어나는 순간, 잣대는 흉기가 됩니다. 1935년이 그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의 결론은 한 문장입니다. 교회가 이단을 판정하는 그 순간에도, 말씀은 교회를 판정하고 있습니다.

근거·자료

등급: A=직접 증거(원문·공식 문서) / B=학술·연구 / C=참고·한계 명시

  • A 재판 기록(1935-03-29 유죄·7인 재판위원회·교리 변론 배제·1934년 명령 적법성 불심리): This Day in Presbyterian History (PCA Historical Center), “March 29: Machen Found Guilty (1935)” 및 “The Trial of J. Gresham Machen”
  • A J. Gresham Machen, Christianity and Liberalism (1923) — 원저. 국역본: 『기독교와 자유주의』
  • A The Auburn Affirmation (1924) — 최종 서명 목사 1,274명
  • A 성경 본문: 히브리서 4:12 —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 B Ned B. Stonehouse, J. Gresham Machen: A Biographical Memoir (1954) — 생애·유학·마지막 전보의 표준 전기
  • B D. G. Hart, Defending the Faith: J. Gresham Machen and the Crisis of Conservative Protestantism in Modern America (1994)
  • C 명시적 한계: 어번 선언 서명자 수는 최종 명부 기준의 통설이며 집계 시점에 따라 다른 수치가 인용되기도 합니다. 재판 절차 세부는 PCA Historical Center 수록 기록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우리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적습니다.

교회 리더를 위한 자료

설교 활용 — 히브리서 4:12의 이중 구도: 말씀으로 판단하는 교회는 먼저 말씀의 판단 아래 선다. 판정의 권위는 자리(재판석)가 아니라 근거(말씀)에서 나온다.

소그룹 활용 — 나눔 질문: 근거 없는 관용과 절차 없는 판정, 우리 공동체는 어느 쪽으로 기울기 쉽습니까.

제직회·당회 활용 — 이단 관련 결의를 인용·공지할 때 결론만이 아니라 근거 조항(어느 신앙고백의 어느 항목에 위배되는가)을 함께 적시하는 관행 도입.

추가 독서 — 『기독교와 자유주의』(국역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장·제31장(공회의와 협의회), 지난 두 글의 자료 목록.

인용 가능 핵심 문장 —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히브리서 4:12,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함께 읽기: 4년 만에 뒤집힌 판정 — 2026 총회, 세 개의 이단 결의를 잣대로 읽다 (이 글의 전편) · 총회는 어떻게 이단을 결정하는가 (시리즈 첫 글). 인물·계보 시리즈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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