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시대, 젊은 부부는 무엇을 잘못했나 | 시대의 표적

이 글이 답하는 질문

  • 반세기 사이에 태어나는 아이는 얼마나 줄었는가?
  •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젊은 세대의 이기심 때문인가?
  • 아이를 프로젝트로 읽게 만드는 시대의 우상은 무엇인가?
  • 아이를 기다리는 부부와 교회는 무엇을 붙들 수 있는가?

한눈 요약. 1971년 102만 명이 넘던 출생아는 2025년 25만 4,300명으로 줄었습니다. 합계출산율은 0.80명으로 두 해 연속 조금 올랐지만, 여전히 둘이 만나 한 명도 채 낳지 못하는 나라입니다. 아이 없는 기혼 남녀의 절반은 아이를 원하고, 출생아 일곱 명 중 한 명은 난임 시술로 태어납니다. 이기심이 아니라 두려움과 구조입니다. 성경의 언약 가정은 아이 없는 노부부의 장막에서, 조건이 아니라 약속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명절 식탁에서

명절 식탁을 떠올려 봅니다. 오랜만에 모인 가족, 김이 오르는 국그릇. 그때 누군가 웃으며 묻습니다. 아이는 언제 가질 거니. 식탁이 잠깐 조용해집니다.

서른여섯의 며느리가 숟가락을 내려놓습니다. 그녀는 이 년째 병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로. 그날 밤 그녀의 질문은 방문을 닫은 자녀 앞의 어머니, 셔터 앞의 사장님이 던진 질문과 똑같습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이 글은 그 질문을, 시대를 분별하라는 말씀의 눈으로 다시 읽어 보려는 글입니다.

102만에서 25만으로

숫자부터 정직하게 봅니다. 1971년 이 땅에서 태어난 아기는 102만 4,773명이었습니다. 통계를 낸 이래 가장 많은 해였습니다. 한 반에 육칠십 명이 앉고 오전반과 오후반을 나누던 시절입니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년 출생 통계」에 따르면 작년에 태어난 아기는 25만 4,300명이었습니다. 반세기 만에 사분의 일로 줄었습니다.

여성 한 사람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 수, 곧 합계출산율은 2025년 0.80명이었습니다. 2023년 0.72명까지 내려갔다가 두 해 연속 조금 올라섰습니다. 반가운 소식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만나 한 명도 채 낳지 못하는 나라라는 사실은 그대로입니다.

다른 숫자도 있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연구에 따르면 2024년 출생아의 15.1%는 난임 시술을 거쳐 태어났습니다. 일곱 명 가운데 한 명꼴입니다. 2025년 출생아의 37.3%는 서른다섯 살 이상의 엄마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아이를 원하지 않는 나라가 아니라, 아이를 기다리다 지쳐 가는 나라의 얼굴이 이 숫자들 속에 있습니다.

이기심이 아니라 두려움이다

여기에도 익숙한 진단이 있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이기적이라서, 편하게만 살려고 해서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숫자는 다르게 대답합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2024년에 실시한 인식조사에서 아직 아이가 없는 기혼 남녀의 50.7%가 아이를 낳을 생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둘 중 하나는 아이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 걸음을 붙잡을까요. 같은 조사에서 아이를 더 낳지 않거나 계획하지 못한 이유로 가장 많이 꼽힌 것은 양육비 부담(46.1%)이었고, 그다음은 아이 키우는 일이 너무 어렵게 느껴져서(40.7%)였습니다.

게으름이나 이기심이 아닙니다. 두려움입니다. 집값과 교육비, 일과 육아 사이에서 끝없이 계산을 해 보다가 그 계산이 맞지 않아 멈춰 선 것입니다. 그리고 계산과 상관없이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데도 아이가 오지 않는 부부들이 있습니다. 일곱 명 가운데 한 명이 난임 시술로 태어나는 나라라면, 그 뒤에는 수없이 실패한 시술과 말하지 못한 눈물이 쌓여 있습니다. 이기심은 원인이 아니라 오진입니다. 그 오진이 명절 식탁에서, 이미 상처 입은 부부의 어깨에 낙인을 하나 더 얹습니다.

다 갖춘 뒤에야 — 이 시대의 우상

한 겹 더 내려가 봅니다. 왜 아이 앞에서 우리는 이토록 두려워질까요. 우리 시대가 아이를 선물이 아니라 프로젝트로 읽기 때문입니다. 집을 갖추고, 직장을 굳히고, 학원비까지 계산이 끝난 뒤에야 아이를 맞을 자격이 생긴다는 생각입니다. 부모 노릇마저 성적표가 되었습니다. 아이에게 최고를 해 주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낳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결론이, 이기심이 아니라 오히려 책임감의 얼굴로 찾아옵니다.

지난 두 편에서 본 쓸모의 저울과 성과의 저울이 이번에는 요람 앞에 서 있습니다. 모든 것을 내 손으로 완벽하게 세워야 한다는 믿음. 그것이 이 시대의 우상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믿음을 오래전에 깨뜨렸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 시편 127:1,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 시편 127:2,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집을 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다 갖춘 다음에 부르심에 응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 갖추지 못한 채로 약속을 붙드는 사람들입니다.

아프지만 물어야 합니다. 교회는 이 우상과 무관했습니까. 아이가 많은 가정을 믿음의 증거처럼 높이고, 아이가 없는 부부에게는 기도가 부족하다고 쉽게 말해 오지 않았습니까. 혹은 저출생을 나라의 숫자 문제로만 걱정하면서, 사람을 국력의 자원으로 계산하는 시대의 셈법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습니까. 아이는 숫자가 아닙니다. 그렇게 읽는 순간 우리는 성전에서 울며 기도하던 한나를 술 취했다고 오해한 제사장의 자리에 앉게 됩니다(삼상 1:13-14).

별을 세어 보라

그렇다면 하나님은 아이를 기다리는 부부를, 그리고 아이 앞에서 두려워하는 세대를 어떻게 대하실까요. 성경이 말하는 언약 가정의 첫 장면은 아이가 없는 노부부의 장막입니다. 아브람과 사래. 약속은 받았지만 해가 가고 또 가도 아이는 오지 않았습니다. 어느 밤 아브람은 하나님께, 이대로라면 집에서 자란 종이 자기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털어놓습니다(창 15:2-3). 하나님은 대답 대신 그를 장막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 창세기 15:5,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 창세기 15:6,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순서를 보십시오. 아이가 생긴 다음에 믿은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빈 장막 앞에서 별을 올려다보며 믿었습니다. 언약 가정은 조건으로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약속으로 세워졌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성품을 봅니다. 하나님은 자격을 확인한 뒤에 약속하시는 분이 아니라, 먼저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끝까지 지키시는 분입니다. 빈 장막 앞에 선 사람을 꾸짖지 않으시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 하늘을 보여 주시는 분입니다. 그 약속은 마침내 한 후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갈 3:16). 그래서 신약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면 누구나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선언합니다(갈 3:29). 아이가 있는 집도, 끝내 아이가 오지 않은 집도, 혼자 사는 성도도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이 올려다본 그 별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아이 수로 채점하지 않으십니다. 성경이 자식을 여호와의 기업이라 부를 때(시 127:3), 그것은 성적표가 아니라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선물은 자격을 갖춘 사람이 받는 것이 아니라 주시는 분의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젊은 부부는 무엇을 잘못했나

이제 제목의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젊은 부부는 무엇을 잘못했나. 이번에도 질문의 문법부터 고쳐야 합니다. 범인을 찾는 문법으로는 아무도 다시 일어서지 못합니다. 물어야 할 것은 누구의 잘못인가가 아니라, 이제 무엇을 붙들 것인가입니다.

아이 앞에 선 부부들께 조심스럽게 권합니다. 먼저 아이를 믿음의 성적표로 읽지 마십시오. 아이가 있다는 것도, 아직 없다는 것도 하나님 앞에서의 점수가 아닙니다. 그리고 두려움을 혼자 계산하지 마십시오.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지는 날은 어느 부부에게도 오지 않습니다. 집을 세우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약속 앞으로, 그 계산을 기도의 자리로 가져오십시오.

기다리는 길을 걷고 있다면 그 시간을 실패라고 부르지 마십시오. 아브람의 빈 장막은 버려진 자리가 아니라 약속이 머문 자리였습니다. 난임으로 지친 부부를 돕는 공적 지원 창구와 상담 센터도 열려 있습니다. 혼자 견디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두 사람만으로도 이미 가정입니다. 하나님이 처음 세우신 가정은 아이보다 먼저, 서로를 마주 본 두 사람이었습니다.

부모님 세대와 교회의 어른들께도 부탁드립니다. 아이는 언제 가질 거니, 라고 묻지 마십시오.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말하지 못한 상처를 건드리는 질문일 수 있습니다. 대신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를 물어 주십시오. 그리고 그 대답을 끝까지 들어 주십시오.

함께 키우는 교회

교회에도 한 가지를 청합니다. 아이를 함께 키우는 교회가 되어 주십시오. 예수님은 둘러앉은 무리를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 마가복음 3:35,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교회는 핏줄로 맺어진 가족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가족입니다. 그렇다면 한 아이는 한 가정만의 짐이 아니라 온 교회의 기쁨이어야 합니다. 예배 시간에 아이를 함께 돌보는 손, 맞벌이 부부의 아이를 하교 뒤에 맞아 주는 공간, 지친 엄마에게 반찬 한 통을 건네는 이웃. 그것이 저출생 시대에 교회가 보여 줄 수 있는 언약 공동체의 표적입니다.

아이가 없는 성도들이 상처받지 않는 강단도 되어 주십시오. 가정의 달 광고 하나, 기도 한 줄에도 그 자리에 앉은 부부를 기억해 주십시오. 아이를 낳지 않은 이들도 교회 안에서 누군가의 영적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시편은 하나님이 외로운 이들에게 가족을 주시는 분이라고 노래합니다(시 68:6). 교회가 바로 그 가족입니다.

그래서 이 글의 결론은 한 문장입니다. 아이 울음이 그친 것은 한 세대의 이기심이 아니라 시대의 두려움이며, 그 두려움 앞에서도 언약 가정은 조건이 아니라 약속으로 세워집니다.

근거·자료

등급: A=직접 증거(공식 문서·정부 발표) / B=학술·연구·언론 보도 / C=참고·한계 명시

  • A 국가데이터처 「2025년 출생 통계」(2026-08-26) — 출생아 25만 4,300명, 합계출산율 0.80명(전년 0.75명), 35세 이상 산모 출생아 비중 37.3%. 정리 자료: KDI 경제교육·정보센터 · e-나라지표
  • B 1971년 출생아 102만 4,773명(통계 이래 최다) — 통계청 출생통계 관련 보도: 경북매일(2018-08-14) · 머니투데이(2022-08-31)
  • B 2023년 합계출산율 0.72명 — 2024년 0.75명이 전년보다 0.03명 오른 수치라는 통계청 발표 보도: 매일신문(2025-03-22)
  • B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난임 시술 부작용 분석 및 관리 방안 마련 연구」 — 2024년 출생아 중 난임 시술 출생아 15.1%(3만 6,025명). 보도: 의약일보
  • A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결혼·출산·양육 및 정부 저출생 대책 인식조사」(2024-10-14 발표, 25~49세 2,592명) — 기혼 무자녀 출산 의향 50.7%, 추가 출산 의향이 없거나 계획하지 못한 이유 양육비용 부담 46.1%·양육이 어렵게 느껴져서 40.7%(1+2순위). 보도: 경북매일 · 서울신문
  • A 성경 본문: 시편 127:1-3, 창세기 15:2-6, 갈라디아서 3:16·29, 사무엘상 1:13-14, 마가복음 3:35, 시편 68:6 —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 C 명시적 한계: 출산 의향 조사는 시점과 문항에 따라 수치가 달라지며, 난임 시술 출생아 비중은 건강보험 청구 자료 기준입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고, 이 글은 그 모두를 대변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적습니다.

교회 리더를 위한 자료

설교 활용 — 창세기 15:5-6의 구도: 빈 장막 안의 탄식에서 장막 밖의 별로. 믿음이 조건의 충족보다 먼저 온다.

소그룹 활용 — 나눔 질문: 우리 공동체의 말과 광고는 아이 없는 부부와 홀로 사는 성도에게 어떻게 들리고 있습니까.

제직회·당회 활용 — 예배 시간 공동 돌봄, 맞벌이 가정 하교 돌봄 공간, 난임 부부를 위한 조용한 중보 모임을 의논. 묻는 말은 재촉이 아니라 안부의 문법으로.

추가 독서 — 창세기 15장과 18장, 사무엘상 1장(한나의 기도), 시편 127편.

인용 가능 핵심 문장 —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세기 15:6,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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