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는 폐허에서 쓴 시입니다.
예루살렘이 무너졌습니다. 성전이 불탔고, 사람들은 끌려갔습니다. 예레미야는 그 잿더미에 앉아 다섯 편의 슬픈 노래를 씁니다. 그런데 그 한복판, 셋째 노래의 중심에서 뜻밖의 문장이 나옵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 예레미야애가 3:22-23,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아침마다, 입니다. 이 조사 하나가 문장의 무게를 바꿉니다. 은혜는 한 번에 몰아서 오지 않습니다. 하루치씩 새로 옵니다. 광야의 만나가 그랬습니다. 이틀치를 거두면 상했습니다(출 16:20). 어제의 은혜로 오늘을 살 수 없고, 오늘의 힘으로 내일을 미리 살 수도 없습니다. 은혜의 유통기한은 하루입니다. 그래서 매일 새 것이 옵니다.
폐허에서 이 문장이 나왔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형편이 나아져서 쓴 고백이 아닙니다. 성벽은 여전히 무너져 있었습니다. 바뀐 것은 시선입니다. 잿더미를 보던 눈이, 잿더미 위로 떠오르는 아침을 본 것입니다. 소망은 상황의 보고서가 아니라 성품의 고백입니다.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다는.
여기 하나님의 성품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창고에 쌓아 두고 배급하시는 분이 아니라, 아침마다 새로 지어 보내시는 분입니다. 그 공급이 끊기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형편이 아니라 그분의 성실하심입니다. 폐허가 은혜를 막지 못합니다.
어제가 무너진 분에게, 이 문장을 건넵니다. 폐허에도 아침은 옵니다. 오늘 치 은혜가 이미 도착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아침, 당신에게 도착한 새 것은 무엇입니까?
함께 묵상할 질문
- 나는 지금 ‘어제의 은혜’를 재탕하며 버티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치를 받으러 나아가는 나의 아침 자리는 어디입니까?
- 내 삶의 폐허 — 무너진 채로 남아 있는 자리 — 에서, 그럼에도 새로 도착한 것 하나를 적어 본다면?
「쉼표 묵상」 2차 연작 「밤을 지나는 법」은 내려놓음 — 지키심 — 새로움으로 이어집니다. (6편 · 2차 아크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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