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묵상 ㉒
— 기도가 나오지 않는 밤에

기도하려고 앉았는데 한 줄도 나오지 않는 밤이 있습니다.

무릎은 꿇었는데 입이 열리지 않습니다. 무엇을 구해야 할지도,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정죄하는 생각이 따라옵니다. 기도도 못 하는 사람이 무슨 신앙인가.

바울은 그 자리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로마서 8장에서 피조물이 함께 탄식하고, 우리도 속으로 탄식한다고 말합니다(롬 8:22-23). 그리고 그 탄식 위에 한 문장을 놓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 로마서 8:26,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바울은 이 연약함을 숨기지 않습니다. 연약함은 감출 대상이 아니라 고백할 대상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다음입니다. 우리가 말을 잃은 바로 그 자리에서,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간구하십니다. 기도가 멈춘 것처럼 보이는 밤에도 기도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몇 절 뒤에 그는 또 한 분의 중보자를 소개합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 로마서 8:34,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안에서는 성령께서 탄식하시고, 하나님 우편에서는 그리스도께서 간구하십니다. 우리의 연약함 안쪽에도, 우리를 향한 정죄 바깥쪽에도 중보가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 정죄하리요”라는 물음 앞에서, 기도하지 못한 밤조차 정죄의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여기 하나님의 성품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잘하는 사람만 상대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기도할 말을 잃은 자녀를 위해 성령께서 탄식하시고, 성자께서 간구하시며, 마음을 살피시는 성부께서 그 탄식의 뜻을 아십니다(롬 8:27).

오늘 밤은 침묵으로 앉아 있어도 됩니다.

당신이 말을 잃은 그 자리에서, 기도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

함께 묵상할 질문

  1. 최근 기도할 말을 잃었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그때 나는 나 자신을 어떻게 판단했습니까?
  2. 성령의 탄식과 그리스도의 간구가 오늘 밤에도 계속된다면, 내가 내려놓아야 할 정죄의 목소리는 무엇입니까?

「쉼표 묵상」 소연작 「말 없는 밤」은 셈을 멈춤 — 길을 맡김 — 소리를 끔 — 말을 잃음 — 몸을 눕힘으로 이어지며, 말이 끊긴 자리에서 대신 탄식하시는 성령께 닿습니다. (22편 · 소연작의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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