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하게 다가온 사람을 의심하는 일이 얼마나 마음 불편한지, 저도 목회 현장에서 여러 번 보았습니다.
짧게 답하면
가장 확실한 신호는 비밀입니다. 성경공부를 다니는 교회 목사님이나 가족에게 말하지 말라고 한다면, 그 공부는 오늘 멈추고 바로 확인하셔야 합니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요한은 모든 영을 다 믿지 말고 분별하라고 말합니다. 의심하는 것이 믿음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분별은 성경이 명령하는 믿음의 일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 요한일서 4:1,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그렇다면 무엇으로 분별할까요? 예수님 자신의 말씀이 기준이 됩니다.
대제사장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캐묻자, 예수님은 숨긴 것이 없다고 대답하셨습니다. 회당과 성전에서 모두가 듣는 가운데 가르치셨다는 것입니다(요 18:20).
원어로 보면
παρρησία
파레시아
드러내 놓고, 숨김없이
“드러내 놓고”로 옮겨진 말이 파레시아입니다. 모든 것을 말한다는 뜻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예수님의 진리는 문을 닫고 몰래 전하는 비법이 아니었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바울의 설교를 듣고도 날마다 성경을 펴서 확인했습니다(행 17:11). 성경은 그들을 신사적이라고 칭찬합니다. 바른 가르침은 확인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한국교회에서 이 질문이 아픈 이유
신천지는 처음부터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설문, 심리검사, 고민 상담, 문화강좌 같은 친근한 모임으로 시작합니다. 관계가 깊어지면 소규모 성경공부를 권하고, 나중에 더 큰 교육 장소로 옮기게 합니다.
최근에는 이름을 걸고 무료 성경공부를 공개 모집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장소와 단체 이름을 직접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강사가 누구인지, 어느 교회 소속인지 물었을 때 대답을 피한다면 그것이 이미 답입니다.
그런데 왜 교회 안의 청년들까지 이런 공부에 끌릴까요? 교회가 성경을 깊이 배우고 싶은 갈증을 충분히 채워 주지 못한 것은 아닐까요? 의심을 꺼냈을 때 꾸중부터 들을까 봐 혼자 고민하는 청년이 우리 곁에 있지는 않습니까?
목회 현장과 언론 보도에서 반복되는 이야기
시작은 대개 평범합니다. 캠퍼스 설문조사, 진로 상담, 취미 모임에서 만난 친절한 사람입니다.
몇 주 동안 고민을 들어 주던 그 사람이 아는 전도사님을 소개합니다. 성경을 쉽게 풀어 준다는 공부가 시작되고, 다니는 교회에는 아직 말하지 말라는 당부가 붙습니다. 탈퇴한 사람들의 증언에서 거의 똑같이 되풀이되는 흐름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다음 모임에 가기 전에 멈추십시오. 받은 교재 사진과 모임 장소, 강사 이름을 다니는 교회 목사님께 그대로 보여 주십시오. 진짜 성경공부라면 그 확인 때문에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 본문에 드러난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은 빛이시고 그분 안에는 어둠이 조금도 없습니다(요일 1:5). 그래서 하나님의 진리는 숨지 않습니다. 의심하는 사람을 내쫓지 않으시고, 확인하러 오는 사람을 기다려 주시는 분입니다.
진리는 비밀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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