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 다니고 혼자 신앙생활 하면 안 되나요?

교회 문을 나서며 다시는 오고 싶지 않다고 느낀 날이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질문이 반항이 아니라 상처에서 나온 말일 수 있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짧게 답하면

혼자서도 기도할 수 있고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신앙을 혼자 완성되는 길로 그리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열어 주신 길은 ‘나’의 길이 아니라 ‘우리’의 길입니다. 상처 때문에 멈춰 섰다면 정죄가 아니라 회복이 먼저입니다. 다만 그 회복도 결국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납니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히브리서 10장은 모이라는 말부터 하지 않습니다. 먼저 예수님이 하신 일을 길게 설명합니다. 그분이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셨고, 그래서 휘장이 찢어졌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새로운 살 길”(히 10:20)이 열렸다고 말합니다.

그 길이 열린 다음에 권면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문장의 모양이 눈에 띕니다. 나아가자, 굳게 잡자, 돌아보자. 저자는 명령하지 않고 함께 가자고 말합니다. 자기도 그 행렬에 서 있습니다.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히브리서 10:23,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소망을 굳게 잡는 일은 혼자 이를 악무는 일이 아닙니다. 바로 다음 절이 그 방법을 알려 줍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브리서 10:24-25,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원어로 보면

ἐπισυναγωγή

에피쉬나고게

한자리로 함께 모여듦

헬라어 · 히브리서 10:25

“모이기”로 옮겨진 이 말은 흩어진 것이 한곳으로 모여드는 그림을 담고 있습니다. 행사 참석이 아닙니다. 서로를 향해 몸을 옮기는 일입니다.

이 편지를 받은 사람들은 편한 교회를 떠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비방을 받고 재산을 빼앗기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고난받는 이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히 10:33)라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몇몇은 모이는 자리에서 조용히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저자는 그들을 꾸짖기 전에 그 습관이 얼마나 쉽게 퍼지는지를 경고합니다.

불에서 꺼낸 숯 하나를 떠올려 보십시오. 처음에는 여전히 붉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회색으로 식어 갑니다. 숯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혼자 있어서입니다.

교회에 데인 사람에게, 그래도 함께여야 하는 이유

교회에 다니지 않지만 신앙은 버리지 않았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 뒤에는 대개 이야기가 있습니다. 권위로 누르던 리더가 있었고, 쉼 없이 몰아붙이던 봉사가 있었고, 질문을 불신앙으로 여기던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 아픔은 진짜입니다. 교회가 먼저 고개를 숙여야 할 일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학대나 착취가 있는 자리라면 떠나는 것이 맞습니다. 그것은 믿음을 버리는 일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는 일입니다.

하지만 한 교회를 떠나는 것과 그리스도의 몸을 떠나는 것은 다릅니다. 바울은 눈이 손에게 너는 쓸 데 없다고 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고전 12:21). 몸에서 떨어진 손은 자유로운 손이 아닙니다. 피가 돌지 않는 손입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제55문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성도의 교제란 모든 신자가 그리스도와 그분의 은사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각자가 받은 은사를 다른 지체의 유익을 위해 기꺼이 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내 은사는 나만 쓰라고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없으면 누군가의 몫이 빕니다.

혼자 하는 신앙은 편합니다. 아무도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래서 위험합니다. 아무도 나를 돌아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온라인 예배는 다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집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함께 구원받았습니다. 함께 자라도록 지어졌습니다.

이런 질문이 자주 올라옵니다

오래 섬기던 교회에서 크게 상처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믿었던 리더에게 배신감을 느꼈고, 그 뒤로 예배당에 들어서기만 해도 숨이 막힌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믿는데 교회는 못 가겠다고 말합니다.

팬데믹 이후 집에서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다 그대로 굳어졌다는 고백도 잦습니다. 처음에는 편했는데, 어느새 기도도 말씀도 희미해졌다고 합니다. 누구도 안부를 묻지 않으니 사라져도 모를 것 같다고 합니다.

이런 분께는 서두르지 말라고 말씀드립니다. 큰 교회의 주일 예배가 부담스럽다면 믿을 만한 신앙 친구 한두 명과 말씀을 나누는 데서 시작해도 좋습니다. 그리고 상처를 이야기할 수 있는 건강한 공동체를 천천히 찾아보십시오. 깊은 상처로 일상이 흔들린다면 전문 상담의 도움을 받는 것도 믿음과 함께 갈 수 있는 길입니다. 다시 모이는 걸음은 작아도 됩니다. 방향이 중요합니다.

이 본문에 드러난 하나님의 성품

히브리서는 하나님을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히 10:23)라고 소개합니다. 우리가 흔들려도 그분의 약속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실망한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실망시키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 미쁘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흩어 두지 않으시고 한자리로 불러 모으십니다. 큰 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으로 길을 여신 것은 우리가 그 길을 함께 걷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혼자 믿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서는 백성을 부르십니다.

지금 당신 곁에서 당신을 돌아봐 줄 한 사람, 그리고 당신이 돌아봐 줄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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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답변: 지중배 (성경강해학 박사 · 한국성서대 외래교수)

남양주 다산에서 담임목사가 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