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기도를 몇 달째 드리며 천장만 바라보는 밤을 지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 질문을 쓰기까지 얼마나 오래 참으셨을지 저는 가볍게 넘길 수 없습니다.
짧게 답하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에는 침묵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울부짖은 사람들의 기도가 그대로 실려 있습니다. 그 침묵은 버림의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이 아직 일하고 계신 시간입니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시편 13편은 짧습니다. 여섯 절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짧은 시 안에서 다윗은 같은 말을 네 번이나 되풀이합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시편 13:1,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놀랍지 않습니까? 성경은 이 원망 섞인 기도를 지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배의 노래로 남겼습니다. 하나님께 따지는 것도 기도라는 뜻입니다. 등을 돌린 사람은 따지지 않습니다. 아직 그분을 붙들고 있는 사람만 어느 때까지냐고 묻습니다.
다윗은 탄식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탄식은 간구가 됩니다. 그는 하나님을 여전히 자기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매달립니다.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시편 13:3,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그리고 상황이 바뀌었다는 말이 한 줄도 없는데, 시는 갑자기 방향을 틉니다.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시편 13:5,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원어로 보면
חֶסֶד
헤세드
변함없는 사랑, 언약에 묶인 신실함
“주의 사랑”으로 옮겨진 말이 헤세드입니다. 기분 따라 오르내리는 사랑이 아닙니다. 약속으로 묶어 두신, 끝까지 놓지 않는 사랑입니다. 원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습니다. 응답도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붙든 것은 응답이 아니라 응답하실 분의 성품이었습니다.
느낌은 버려졌다고 말합니다. 헤세드는 붙들려 있다고 말합니다.
응답을 기다리는 청년이 흔히 빠지는 오해
취업, 연애, 가족의 병, 끝나지 않는 불안. 청년의 기도 제목은 대부분 시간이 걸리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다리는 동안 응답을 몇 가지로 좁혀 버립니다.
응답은 내가 원한 결과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녀가 달라는 것을 다 주지 않습니다. 거절도, 다른 길도 응답입니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고 응답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응답은 빨라야 한다고 믿기도 합니다. 클릭 한 번이면 배송되는 시대에 기다림은 실패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시간은 택배의 시간이 아닙니다. 늦어지는 것과 잊히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가장 깊은 오해는 침묵을 버림으로 읽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버림받으신 분이 따로 계십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느냐고 외치셨습니다(마 27:46). 그것은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와 버림을 실제로 당하셨습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44문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겪으신 말할 수 없는 고뇌와 고통으로 우리를 지옥의 고통에서 구하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분이 우리 대신 버림받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분 안에 있는 우리는 결코 버림받지 않습니다.
이런 질문이 자주 올라옵니다
몇 년째 같은 제목으로 기도했다는 고백이 자주 올라옵니다. 새벽기도도 나가고 금식도 했는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다 풀리는데 나만 멈춰 있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러다 결국 묻습니다. 내가 뭘 잘못해서 하나님이 외면하시는 거냐고. 기도할 힘조차 없어서 이제는 교회에 가기도 싫다고 합니다.
이런 분께는 기도의 문장을 바꿔 보시라고 권합니다. 잘 포장된 기도 대신 시편 13편처럼 어느 때까지냐고 솔직하게 물으십시오. 말이 안 나오면 성령께서 탄식으로 대신 기도하신다고 성경은 말합니다(롬 8:26). 혼자 견디지 마시고 믿을 만한 지체에게 털어놓으십시오. 그리고 잠과 식욕이 무너지고 사라지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꼭 정신건강 전문가의 상담과 치료를 받으십시오. 치료를 받는 것은 믿음이 약해서가 아닙니다. 신앙과 치료는 함께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사의 손을 통해서도 일하십니다.
이 본문에 드러난 하나님의 성품
시편 13편의 하나님은 따지는 기도를 받아 주시는 분입니다. 얼굴을 숨기신 것처럼 보일 때에도 헤세드를 거두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자리에서 주께서 은덕을 베푸셨다고 노래합니다(시 13:6). 응답이 오기 전에 이미 응답하실 분을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기도는 허공에 흩어지지 않았습니다. 버림은 십자가에서 이미 끝났습니다. 그분은 지금 듣고 계십니다.
오늘 밤, 포장하지 않은 당신의 어느 때까지니이까를 하나님께 그대로 올려 드릴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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