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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8:3-5 강해 — 별 앞에서 작아진 밤, 하나님 마음에 걸린 이름

시편 8:3-5는 사람이 작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 작은 사람을 하나님이 기억하신다는 사실을 선포합니다. 다윗은 밤하늘 앞에서 자기가 얼마나 작은지 압니다. 그런데 그 작음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고 경탄으로 바뀝니다. 사람의 가치는 크기나 성취에서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마음에 두신다는 데서 옵니다.

도시의 밤하늘에는 별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늦게 귀가하는 길에 문득 고개를 들 때가 있습니다. 희미한 별 몇 개가 보이고, 건물 사이에 달이 걸려 있습니다. 그 순간 마음이 이상하게 조용해집니다. 그리고 곧 다른 생각이 따라옵니다. 저 하늘에 비하면 오늘 내가 붙들고 씨름한 일들은 다 무엇일까.

먼 우주에서 찍은 사진 속 지구는 점 하나로 보인다고 합니다. 그 점 안에 수십억의 사람이 있고, 그 가운데 하나가 저입니다. 저는 그 사실 앞에서 겸손해지기보다 허무해질 때가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무언가를 이루려 했습니다. 작지 않다는 증거를 만들고 싶었던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않을 것 같은 밤, 당신은 무엇으로 당신의 존재를 붙들고 있습니까.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시편 8:3-5, 성경: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이 질문은 찬양과 찬양 사이에 놓여 있다

시편 8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8:1). 그리고 같은 문장으로 끝납니다(8:9). 처음과 끝이 같은 고백으로 묶여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질문은 그 한가운데 있습니다.

이 구조가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 시편 8편은 인간 찬가가 아닙니다. 하나님 찬가입니다. 사람의 존귀함은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액자 안에서만 제대로 보입니다. 액자를 떼어 내면 사람은 둘 중 하나가 됩니다. 우주의 먼지가 되거나, 스스로 신이 되려는 교만이 됩니다.

2절도 놓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8:2)라고 고백되는 분입니다. 원수를 잠잠하게 하시려고 가장 약한 입을 고르십니다. 이런 하나님이라면 별 앞에서 작아진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실 것입니다. 2절은 이미 4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떠올리시는 데서 멈추지 않으신다

“사람이 무엇이기에”에서 사람은 히브리어 ‘에노쉬'(אֱנוֹשׁ)입니다. 연약하고 쉽게 스러지는 인간을 가리킬 때 자주 쓰이는 말입니다. 다윗은 사람을 대단한 존재로 포장하지 않습니다. 부서지기 쉬운 존재라고 먼저 인정합니다.

그런데 그 연약한 사람을 하나님이 “생각하시며”(8:4)라고 말합니다. 이 동사가 ‘자카르'(זָכַר)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기억하신다는 것은 머릿속에 잠깐 떠올리신다는 뜻에 그치지 않습니다. 홍수 속의 노아를 기억하시자 물이 줄었습니다(창 8:1). 하나님의 기억은 행동으로 이어지는 기억입니다. 마음에 두시고, 손을 쓰십니다.

짝을 이루는 “돌보시나이까”는 ‘파카드'(פָּקַד)입니다. 찾아가서 살피고 필요를 채운다는 뜻을 담은 말입니다. 생각하시는 하나님은 찾아오시는 하나님입니다. 기억은 방문이 됩니다.

여기에 작은 대조가 하나 더 있습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것입니다(8:3). 그 광대한 우주가 하나님께는 손가락 끝의 일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손가락 끝만도 못한 사람을 마음에 두십니다.

작다는 사실과 귀하다는 사실은 함께 선다

다윗의 질문은 두 방향으로 읽힙니다. 하나는 이런 뜻입니다. 사람이 대체 무엇이라고. 하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다른 하나는 이런 뜻입니다. 사람이 대체 무엇이기에. 하나님이 이토록 마음을 쓰시는가. 다윗은 첫째 물음에서 시작해 둘째 물음으로 넘어갑니다. 작음을 인정한 사람만 은혜에 놀랄 수 있습니다.

5절은 그 놀라움의 내용입니다.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8:5). 여기서 ‘하나님’은 ‘엘로힘'(אֱלֹהִים)인데, 고대 헬라어 번역은 이를 천사로 옮겼고 히브리서도 그 번역을 따릅니다(히 2:7). 어느 쪽으로 읽든 핵심은 같습니다. 사람은 피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리, 하늘의 존재 바로 아래 놓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에게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8:5).

주목할 것은 동사의 주어입니다. 관을 쓴 것이 아닙니다. 관을 씌우신 것입니다. 사람은 존귀를 따내지 않았습니다. 받았습니다. 이것이 창세기가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창 1:26-27). 그래서 사람의 가치는 연봉이나 팔로워 수로 오르내리지 않습니다. 성적표에 찍히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이 씌우신 관은 사람이 벗길 수 없습니다.

세상은 말합니다. 증명하라, 그러면 인정해 주겠다. 시편 8편은 말합니다. 이미 기억되었다, 그러니 살아라.

예수님이라면 이 구절을 어떻게 읽으실까

우리는 이 구절을 늘 별 앞에서 작아진 쪽에서 읽습니다. 나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나를 정말 기억하실까. 그런데 히브리서는 이 시를 전혀 다른 자리에서 읽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시편 8편을 인용한 뒤, 지금 우리는 아직 만물이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을 보지 못한다고 말합니다(히 2:8). 사람은 받은 관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죄가 그 관을 더럽혔습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이어 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분이 있다고. 잠시 천사보다 못하게 되셨다가, 죽음의 고난을 받으심으로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님입니다(히 2:9). 시편 8편의 “인자”는 마침내 한 분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즐겨 인자라고 부르셨습니다.

여기서 자리가 뒤집힙니다. 다윗은 왜 하나님이 사람을 기억하시는지 묻습니다. 십자가에서는 하나님께 기억되어야 할 아들이 버림받으신 듯 부르짖으십니다(마 27:46). 그분이 잊힌 자리에 서셨기에, 우리가 기억되는 자리에 섭니다. 그 곁의 강도는 주의 나라에 임하실 때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구했고, 예수님은 오늘 낙원에 함께 있으리라고 답하셨습니다(눅 23:42-43).

그러니 이 구절의 답은 결국 이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십니까. 그 답은 사람 안에 있지 않습니다. 대신 관을 벗으시고 가시관을 쓰신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성품

이 짧은 세 절에서 하나님은 먼저 위대하신 창조주로 드러납니다. 별과 달이 그분 손가락의 작품입니다. 그런데 그 위대하심은 사람을 짓누르는 크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기억하시는 분입니다. 작은 것을 잊지 않으시고, 기억한 것을 찾아가십니다. 또 하나님은 너그러이 주시는 분입니다. 사람이 자격을 갖추기 전에 영화와 존귀를 먼저 씌우십니다. 그리고 그 관이 땅에 떨어졌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버려두지 않으시고 아들을 통해 다시 씌우십니다. 위대하심과 다정하심이 한 분 안에 있습니다.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밤을 살아 보라

이번 주에 한 번은 일부러 밤하늘을 올려다보십시오. 별이 잘 보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달 하나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시편 8편 4절을 소리 내어 읽어 보십시오. 사람이 무엇이기에. 그 질문을 내 이름으로 바꾸어 기도해 보십시오.

또 하나가 있습니다. 하루를 마칠 때 우리는 보통 오늘 무엇을 해냈는지 셉니다. 그 계산을 하루만 멈춰 보십시오. 대신 이렇게 적어 보십시오. 오늘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셨다는 흔적 하나. 끼니, 사람, 지나간 위험, 다시 일어난 마음. 성취 목록 대신 기억하심의 목록입니다.

그리고 내 주변의 작아진 사람 하나를 떠올리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기억하셨다면, 나도 누군가를 기억할 수 있습니다. 짧은 안부 하나가 그 사람에게는 찾아오심이 됩니다.

당신은 작습니다.

그러나 잊힌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소그룹 나눔

  • ① 최근에 내가 작고 무의미하게 느껴졌던 순간은 언제였고, 그때 무엇으로 나를 증명하려 했는가
  • ② 하나님의 기억하심이 생각에 그치지 않고 찾아오심이었다는 것을 내 삶에서 경험한 적이 있는가
  • ③ 존귀가 내가 얻은 것이 아니라 받은 것이라면, 나는 다른 사람을 어떤 기준으로 대하고 있는가
  • 한 주 나눔 과제: 일주일 동안 잠들기 전 ‘기억하심의 목록’을 하루 한 줄씩 적고, 다음 모임에서 그중 하나를 나눈다

자주 묻는 질문

Q1. 사람이 존귀하다는 말은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교만 아닌가요?

시편 8편은 인간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노래입니다. 처음과 끝이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사람의 존귀는 스스로 높아진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씌우신 관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0문은 하나님이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식과 의와 거룩함에서 자기 형상대로 지으시고 피조물을 다스리게 하셨다고 답합니다. 존귀는 받은 것이기에 자랑이 아니라 감사와 책임으로 이어집니다.

Q2. 실패해서 아무것도 이룬 게 없을 때도 저는 가치가 있나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생각하신 이유는 성과가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무엇이기에라고 묻지, 무엇을 했기에라고 묻지 않습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제1문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우리의 유일한 위로가 우리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신실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데 있다고 고백합니다. 가치는 내가 쌓은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에게 속했느냐에서 옵니다.

Q3.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는 천사보다 못하다는 뜻인가요?

히브리어는 ‘엘로힘’이고, 고대 헬라어 번역은 이를 천사로 옮겼으며 히브리서 2장도 그 번역을 따릅니다. 어느 쪽이든 강조점은 사람이 하늘의 존재 바로 아래 높이 세워졌다는 데 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제6문은 하나님이 사람을 선하게, 자신의 형상대로 참된 의와 거룩함 가운데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형상은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새롭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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