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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1편 강해 — 안전한 곳이 아니라 안전한 분

시편 91편은 나쁜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증서가 아닙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숨을 곳이 있다는 약속입니다. 그 숨을 곳은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래서 이 시는 “어디가 안전한가”를 묻는 사람에게 “누구 곁이 안전한가”로 답합니다.

저는 겁이 많은 사람입니다. 밤늦게 휴대폰이 울리면 받기도 전에 가슴이 먼저 내려앉습니다. 큰 사고 소식을 들으면 가족의 이름부터 떠올립니다. 문단속을 두 번 확인하고, 보험 약관을 다시 펼쳐 봅니다. 그렇게 해서 안전해졌느냐고 물으면 대답이 궁해집니다. 문은 잠갔는데 마음은 잠기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요즘 당신을 가장 오래 깨어 있게 하는 걱정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걱정 앞에서 당신이 제일 먼저 달려가는 곳은 어디입니까.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시편 91:1-2, 성경: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덧없는 인생을 노래한 다음에 나오는 시

시편 91편을 제대로 읽으려면 바로 앞의 90편을 함께 펴야 합니다. 90편은 모세의 기도입니다. 그 기도는 인생이 얼마나 짧고 연약한지를 정직하게 노래합니다. 아침에 돋았다가 저녁에 시드는 풀처럼 우리의 날은 금방 지나갑니다(90:5-6). 그런데 그 기도의 첫 줄은 이미 답을 품고 있었습니다. 주께서 대대로 우리의 거처가 되셨다는 고백입니다(90:1). 91편은 그 거처라는 말을 이어받아 펼칩니다. 연약한 인생이 어디에 머물 수 있는지 말해 줍니다.

시의 목소리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1-2절에서는 한 사람이 “나는”이라고 고백합니다. 3-13절에서는 누군가 그 사람을 “너”라고 부르며 약속을 들려줍니다. 그리고 14-16절에서는 마침내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십니다. 고백이 약속을 부르고, 약속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확정됩니다. 이 시는 혼잣말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대답으로 끝납니다.

하나님의 네 이름, 그리고 밤을 지내는 자리

1-2절의 짧은 두 줄 안에 하나님의 이름이 네 번 나옵니다. “지존자”는 ‘엘룐'(עֶלְיוֹן), 가장 높으신 분입니다. “전능자”는 ‘샤다이'(שַׁדַּי), 무엇이든 능히 하시는 분입니다. 이어서 언약의 이름 “여호와”(יְהוָה)가 나옵니다. 마지막에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 곧 ‘엘로하이'(אֱלֹהַי), 나의 하나님이 나옵니다. 이름이 이어질수록 거리가 좁혀집니다. 가장 높으신 분이 결국 나의 하나님으로 불립니다. 피난처는 멀리 있는 성채가 아니라 이름을 불러 들어가는 품입니다.

“그늘 아래에 사는”이라는 말도 그냥 지나치기 아깝습니다. 여기서 “사는”으로 번역된 동사(יִתְלוֹנָן)는 하룻밤을 묵는다는 뜻을 지닌 말입니다. 앞의 “거주하며”가 머물러 앉는 모습이라면, 뒤의 “사는”은 밤을 지내는 모습입니다. 낮에도 그 안에 머물고, 밤에도 그 그늘 아래서 잠듭니다. 뜨거운 광야에서 그늘은 쉼터가 아니라 생명줄이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그런 그늘이라고 부릅니다.

약속은 환난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3절부터 약속이 쏟아집니다. 새 사냥꾼의 올무, 심한 전염병, 밤의 공포, 낮의 화살. 천 명이 왼쪽에서, 만 명이 오른쪽에서 엎드러져도 재앙이 가까이 오지 못한다고 합니다(91:7). 이 대목만 떼어 읽으면 시편 91편은 무적의 주문처럼 들립니다. 실제로 이 시를 부적처럼 지니고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직접 하시는 마지막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91:15). 하나님은 환난이 없을 것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환난 당할 때에 함께하겠다고 하십니다. 이 시의 보호는 사건을 지워 주는 보호가 아닙니다. 사건 속에서 나를 놓치지 않으시는 보호입니다.

4절의 그림이 이것을 잘 보여 줍니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91:4). 어미 새의 날개는 폭풍을 멈추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새끼를 덮습니다. 비바람이 그대로 몰아쳐도 날개 아래의 새끼는 어미의 체온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날개를 지탱하는 힘을 시인은 “그의 진실함”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를 지키는 것은 우리 믿음의 크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14절에서 하나님은 그 이유를 밝히십니다.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91:14). 보호의 조건은 실력이나 공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붙이고 그 이름을 아는 관계입니다. 1-2절에서 네 이름을 부르던 사람이, 마지막에는 그 이름을 아는 사람으로 인정받습니다.

예수님이라면 이 구절을 어떻게 읽으실까

이제 자리를 바꿔 봅시다. 이 시편을 가장 교묘하게 인용한 자는 마귀였습니다. 광야에서 마귀는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말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마 4:6). 그러고는 시편 91편 11-12절을 근거로 내밉니다. 천사들이 손으로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시편 91편을 안전 보증서로 읽으면 바로 이런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게 확실한 약속이라면 한번 시험해 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뛰어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마 4:7). 예수님은 이 시를 하나님을 시험하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고백으로 읽으셨습니다.

그 신뢰는 십자가에서 끝까지 시험받습니다. 잡히시던 밤, 예수님은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구할 수 있다고 하셨지만 구하지 않으셨습니다(마 26:53). 십자가 아래에서 사람들이 조롱합니다.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마 27:43). 겉으로 보면 시편 91편이 무너진 것 같은 순간입니다. 천사도 오지 않았고, 못 박힌 손은 풀려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을 어기지 않으셨습니다. 사흘 뒤, 하나님은 그분을 사망에서 건지시고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91편 15절의 마지막 두 동사가 부활의 아침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복음이 있습니다. 전능자의 그늘 아래 가장 온전히 머무신 분이, 우리를 위해 그 그늘 밖 가장 깊은 어둠으로 걸어 나가셨습니다. 그분이 버림받으셨기에 우리는 그 그늘 아래로 들어갑니다. 우리의 피난처는 이제 한 이름을 가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성품

위험이 없는 곳으로 옮겨 주시는 것보다 더 큰 일이 있습니다. 위험 한가운데서 당신 자신을 피난처로 내어 주시는 일입니다. 시편 91편의 하나님은 그런 분입니다. 가장 높으신 분이면서 나의 하나님이라 불리기를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환난을 멀리서 지켜보지 않고 그 안으로 들어오시는 분입니다. 그 모든 보호의 바닥에는 그분의 진실하심이 깔려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는 날에도 그 신실하심은 방패처럼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는 이유는 우리가 붙든 손의 힘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를 붙드신 그분의 성품에 있습니다.

걱정이 문을 두드릴 때

이번 주에 종이 한 장을 꺼내 보십시오. 요즘 나를 깨어 있게 하는 걱정을 세 가지만 적어 보십시오. 그리고 그 옆에 2절의 고백을 한 줄씩 옮겨 적으십시오.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걱정을 억지로 지우라는 것이 아닙니다. 걱정 옆에 하나님의 이름을 나란히 세우라는 것입니다.

걱정이 다시 문을 두드릴 때마다 그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 보십시오. 지존자, 전능자, 여호와, 나의 하나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곧 그 그늘 아래로 들어가는 걸음입니다. 피난처는 그 위치를 아는 사람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는 사람의 것입니다.

안전한 곳은 무너질 수 있습니다.

안전한 분은 무너지지 않으십니다.

소그룹 나눔

  • ① 위기가 닥칠 때 내가 가장 먼저 찾아가는 ‘피난처’는 무엇인가(사람, 돈, 정보, 습관 등)
  • ② 시편 91편을 ‘사고가 나지 않는다는 보증’으로 읽었던 적이 있는가, 15절의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라는 약속은 그 생각을 어떻게 바꾸는가
  • ③ 예수님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지 않으신 장면은 내 기도 습관에 무엇을 말해 주는가
  • 한 주 나눔 과제: 걱정 옆에 이름 쓰기 — 일주일 동안 걱정이 떠오를 때마다 수첩이나 메모장에 그 걱정과 함께 2절 고백을 적고, 그 한 주 동안 달라진 마음 하나를 다음 모임에서 나눈다

자주 묻는 질문

Q1. 시편 91편을 믿고 기도하면 병이나 사고를 당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약속하는 시가 아닙니다. 15절은 하나님의 사람에게도 환난이 온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마귀가 이 시를 들어 예수님께 뛰어내리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거절하셨습니다(마 4:7).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제27문은 건강과 질병, 부와 가난을 비롯한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 아버지의 손에서 온다고 고백합니다. 시편 91편의 보호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아버지의 손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약속입니다.

Q2. 시편 91편을 매일 소리 내어 읽으면 보호를 받습니까?

이 시를 날마다 읽고 기도하는 것은 귀한 습관입니다. 다만 말씀은 부적이 아닙니다. 읽은 횟수가 우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가리키는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십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제28문은 하나님의 섭리를 아는 사람이 역경에는 인내하고, 형통할 때는 감사하며, 장래 일에 대해서는 신실하신 아버지를 굳게 신뢰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시편 91편을 읽는 목적도 바로 그 신뢰를 자라게 하는 데 있습니다.

Q3. 하나님이 나를 지키고 계신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확신의 근거는 내 감정이나 형편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보여 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바울은 환난이나 곤고나 위험이 와도, 다른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확신합니다(롬 8:35-39).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제1문도 하늘 아버지의 뜻이 아니면 머리털 하나도 떨어질 수 없도록 그리스도께서 나를 지켜 주신다고 고백합니다. 보호의 확신은 형편이 좋아질 때 생기지 않습니다. 나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분을 바라볼 때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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