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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2:2 강해 — 알고리즘이 나를 빚기 전에

로마서 12:2는 세상과 담을 쌓으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세상이 찍어 내는 틀에 나를 맡기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그 틀을 벗어나는 길은 의지력이 아니라 마음의 새로워짐입니다. 마음이 새로워진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는 눈을 얻습니다.

저도 다르지 않습니다. 잠들기 전에 잠깐 보려던 영상이 한 시간이 되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밤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무엇을 볼지 제가 고른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화면은 제가 무엇을 원할지까지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고른 것이 아니라, 저를 고른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오늘 당신의 생각을 가장 오래 붙잡은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2, 성경: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이 명령은 ‘그러므로’ 위에 서 있다

로마서 12장은 “그러므로”로 시작합니다(12:1). 바울은 앞의 열한 장 동안 복음을 펼쳤습니다. 죄 아래 갇힌 인간, 값없이 주어진 의, 성령 안의 새 생명, 끝내 이스라엘까지 품으시는 하나님의 자비. 그 긴 설명이 끝난 뒤에야 바울은 명령합니다. 너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순서가 중요합니다. 은혜가 먼저이고 명령은 그다음입니다. 변화되어야 사랑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사랑받았기에 변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명령의 근거로 내미는 것도 우리의 결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입니다(12:1).

틀에 찍히는 삶, 속에서부터 바뀌는 삶

“본받지 말고”로 번역된 헬라어는 ‘쉬스케마티제스테'(συσχηματίζεσθε)입니다. 겉모양을 뜻하는 ‘스케마’에서 나온 말입니다. 반죽을 틀에 눌러 붕어빵을 찍어 내듯, 바깥의 모양에 맞춰 나를 눌러 넣는 것입니다. 이 동사는 현재형 명령입니다. 지금도 계속 그 틀에 끼워지고 있는 것을 멈추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 반대편에 놓인 말이 “변화를 받아”, 곧 ‘메타모르푸스테'(μεταμορφοῦσθε)입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변태를 뜻하는 영어 메타모포시스가 여기서 나왔습니다. 겉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다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 동사는 수동태입니다. 내가 나를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나를 바꾸십니다.

변화가 일어나는 자리는 “마음”입니다. 여기서 마음은 감정이라기보다 생각의 중심, 곧 ‘누스'(νοῦς)입니다.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무엇을 원할지 정하는 자리입니다. 세상은 겉모양부터 손댑니다. 하나님은 생각의 뿌리부터 손대십니다.

세상은 틀을 팔고, 하나님은 눈을 주신다

“이 세대”는 단지 요즘 사람들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없이 굴러가는 시대의 질서 전체를 말합니다. 그 질서는 늘 틀을 내밉니다. 이렇게 생겨야 사랑받는다. 이만큼 가져야 안전하다. 이 정도는 다들 한다. 예전에는 그 틀이 광고판과 소문으로 왔습니다. 지금은 손바닥 위의 피드로 옵니다. 내가 오래 머문 화면이 내일 내가 볼 화면을 정하고, 그 화면이 다시 내 욕망을 정합니다. 틀은 그렇게 조용히, 매일 우리를 찍어 냅니다.

그렇다면 해법은 휴대폰을 던져 버리는 것일까요. 바울의 처방은 더 깊습니다. 틀을 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마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세상과 거리를 둔다고 사람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무엇을 사랑하는지가 바뀌어야 사람이 바뀝니다.

마음이 새로워진 사람에게는 선물이 주어집니다. “분별”입니다. 헬라어 ‘도키마제인'(δοκιμάζειν)은 금속을 불에 넣어 진짜인지 가려내는 말입니다. 새로워진 마음은 시험해 보고 알아봅니다. 무엇이 선하신 뜻인지, 무엇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인지, 무엇이 흠 없이 온전한 뜻인지. 하나님의 뜻은 금고 속에 숨겨진 비밀번호가 아닙니다. 새로워진 마음이 걸어가며 확인하게 되는 길입니다.

예수님이라면 이 구절을 어떻게 읽으실까

자리를 바꿔 봅시다. 우리는 이 구절을 늘 틀 앞에서 망설이는 쪽에서 읽습니다. 그런데 이 세대가 내민 틀을 가장 정면으로 마주하신 분이 계십니다. 광야의 예수님입니다(마 4:1-11). 돌로 떡을 만들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 천하만국을 줄 테니 절하라. 배부름과 구경거리와 권력. 세상이 지금도 파는 그 틀을 예수님은 말씀으로 하나씩 거절하셨습니다.

변화라는 말도 예수님 앞에서 다시 읽힙니다. 바울이 쓴 ‘메타모르푸스테’는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변형되사” 얼굴이 해같이 빛나셨다고 할 때 쓰인 바로 그 단어입니다(마 17:2).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도 같은 단어를 씁니다. 우리가 주의 영광을 보며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간다고 말입니다(고후 3:18). 그러니 로마서 12:2의 변화는 막연한 자기 계발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닮아 가는 변화입니다.

그리고 겟세마네가 있습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하나님의 뜻을 분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예수님은 그 밤에 보여 주셨습니다. 그 뜻은 쉬운 길이 아니라 십자가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뜻이 선하고, 기뻐하실 만하고, 온전한 뜻이었습니다. 그 뜻 때문에 우리가 살았습니다.

이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성품

이 구절에서 하나님은 먼저 자비로우신 분으로 보입니다. 명령하시기 전에 자비를 쏟으시고, 그 자비 위에 명령을 세우십니다. 또 하나님은 사람을 겉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다루시는 분입니다. 행동을 고치시기 전에 마음을 새롭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감춰 두고 우리를 떠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새로워진 마음에 그 뜻을 알아볼 눈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분의 뜻이 선하고 온전한 것은, 그분이 선하고 온전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 화면을 끄기 전에

거창한 결심부터 하지 마십시오. 오늘 밤 휴대폰을 내려놓기 전에 한 가지만 물어보십시오. 오늘 내 생각을 가장 많이 빚은 것은 무엇이었나. 그 답을 하나님 앞에 그대로 내놓으십시오. 변명하지 말고, 꾸미지 말고.

그리고 내일 아침에는 순서를 바꿔 보십시오. 피드보다 말씀을 먼저 여는 것입니다. 단 한 구절이라도 좋습니다. 마음이 새로워지는 일은 하루아침에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일 아침에 시작될 수는 있습니다.

틀은 매일 우리를 찍어 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매일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소그룹 나눔

  • ① 요즘 내 생각과 욕망을 가장 많이 빚고 있는 ‘틀’은 무엇인가
  • ② 세상과 거리를 두었는데도 마음은 그대로였던 경험이 있는가, 그때 무엇이 빠져 있었는가
  • ③ 나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야 할 비밀’로 여겨 왔는가, ‘걸으며 알아보는 길’로 여겨 왔는가
  • 한 주 나눔 과제: 첫 화면 바꾸기 — 일주일 동안 아침에 휴대폰을 열면 피드보다 먼저 성경 한 구절을 읽고, 그 한 주 동안 달라진 생각 하나를 다음 모임에서 나눈다

자주 묻는 질문

Q1.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것은 세상 문화를 다 멀리하라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바울은 세상을 떠나라고 하지 않고, 세상의 틀에 찍히지 말라고 합니다. 같은 편지에서 바울은 위정자를 존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권합니다(13장). 문제는 문화 그 자체가 아니라, 무엇이 내 마음의 기준을 정하느냐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답합니다. 이 기준으로 문화를 바라볼 때, 우리는 피하지 않으면서도 휩쓸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Q2. 마음이 새로워지는 것은 내 노력입니까, 하나님의 일입니까?

둘 중 하나만 고를 수 없습니다. “변화를 받아”는 수동태입니다. 변화의 주체는 성령이십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것을 명령형으로 말합니다. 우리는 그 일에 자신을 내어 드려야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35문은 성화를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의 사역이라고 고백합니다. 그 은혜로 우리가 전인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새롭게 되고, 점점 더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된다고 말합니다. 은혜가 일하시고, 우리는 그 은혜 안에서 움직입니다.

Q3.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로마서 12:2는 하나님의 뜻을 신비한 표적에서 찾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새로워진 마음이 시험해 보며 알아보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말씀으로 새로워집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제124문은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간구를, 우리와 모든 사람이 자기 뜻을 버리고 유일하게 선하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해 달라는 기도로 풀이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길은 내 뜻을 내려놓는 자리에서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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