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단어를 두 번 펼칩니다.
말씀 원액 두 번째 아침에 우리는 헤세드를 만났습니다. 기분이 아니라 약속이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같은 단어를 다른 각도에서 다시 엽니다. 이번에는 이 사랑이 어느 쪽에서 어느 쪽으로 흐르는지를 봅니다.
오늘의 원어
חֶסֶד
체세드
언약 안에서 일방적으로 베푸는 신실한 사랑
우리 성경은 이 단어를 인자, 은혜, 사랑, 자비로 옮깁니다. 번역자마다 다른 말을 고른 것은 한 단어로는 다 담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체세드는 언약 안에서 베푸는 신실한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에는 독특한 방향이 있습니다. 받는 쪽의 자격을 따지지 않습니다. 베푸는 쪽의 약속에 기대어 흐릅니다.
예레미야애가는 무너진 예루살렘의 잿더미 위에서 부른 노래입니다. 성벽은 허물어졌고 성전은 불탔습니다. 받을 자격으로 말하자면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자리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시인이 고백합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 예레미야애가 3:22,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우리가 남아 있는 이유는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여호와의 인자, 곧 체세드가 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이어서 그것이 아침마다 새롭다고 노래합니다(애 3:23).
여기 하나님의 성품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격을 확인한 뒤에 사랑하시는 분이 아니라, 스스로 맺으신 언약 때문에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체세드는 하나님의 기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실하심입니다. 그 사랑이 마침내 십자가에서 자격 없는 우리를 위해 끝까지 흘렀습니다.
당신이 스스로 자격이 없다고 느끼는 바로 그 자리, 체세드는 거기 있습니다.
오늘 그 사랑을 이름으로 불러 보시겠습니까?
함께 묵상할 질문
-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을 먼저 갖추려고 애쓰고 있지 않습니까?
- 무너진 자리에서도 내가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을 오늘 어떻게 감사로 고백하겠습니까?
「말씀 원액」은 아침마다 새로운 말씀 원액 한 방울 — 원어 한 단어로 하루를 여는 짧은 묵상입니다. (14편 · 체세드) 함께 읽기: 말씀 원액 ② — 헤세드, 기분이 아니라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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