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유난히 센 저녁, 길가 가로수가 크게 휘청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으십니까.
우리도 그 나무를 닮았습니다. 아침에 들은 말 한마디에 흔들리고, 오후에 꼬인 일 하나에 또 흔들립니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듭니다. 믿는 사람이 이렇게 흔들려도 되는 걸까.
시편 1편은 시편 전체의 문을 여는 노래입니다. 시인은 복 있는 사람을 소개하면서 먼저 그가 하지 않는 일을 말합니다.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시 1:1). 이어서 그가 즐거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합니다(시 1:2). 그리고 한 그루 나무가 등장합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 시편 1:3,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심은”이라는 말에 먼저 눈이 갑니다. 이 나무는 저절로 시냇가에서 자라난 나무가 아닙니다. 누군가 그 자리에 옮겨 심었습니다. 시인이 말하는 시냇가는 물이 마르지 않도록 대어 놓은 물길에 가깝습니다. 나무가 스스로 물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물이 닿는 자리에 심긴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나무에도 바람은 붑니다. 시편 1편은 바람 없는 인생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열매도 철을 따라 맺힙니다. 아무 때나 맺히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기다리는 계절이 있고, 빈 가지로 서 있는 계절도 있습니다. 그러니 “형통하리로다”를 흔들림 없는 성공으로 읽으면 이 노래를 놓치게 됩니다. 형통은 바람이 비켜 가는 삶이 아니라, 바람 속에서도 뿌리가 물에 닿아 있는 삶입니다.
바로 다음 구절이 그 차이를 보여 줍니다. 악인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합니다(시 1:4). 겨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냥 날아갑니다. 나무는 흔들립니다. 그러나 뽑히지 않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성품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스스로 뿌리를 만들어 내라고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라, 먼저 물가에 심으시는 분입니다. 시편 1편은 여호와께서 의인들의 길을 인정하신다는 선언으로 끝납니다(시 1:6). 우리가 버티는 힘은 우리 안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를 심으시고 우리 길을 아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시편 1편이 그리는 복 있는 사람은 마침내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그분 안에 심긴 사람은 흔들려도 뽑히지 않습니다.
오늘의 흔들림은 뿌리가 없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뿌리가 살아 있어서 바람을 느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밤 당신이 서 있는 그 자리가 이미 시냇가입니다.
흔들렸어도, 당신은 뽑히지 않았습니다.
함께 묵상할 질문
- 오늘 나를 가장 크게 흔든 바람은 무엇이었습니까?
- 내 뿌리가 물에 닿도록, 오늘 밤 펼칠 말씀 한 구절은 무엇입니까?
오늘 저녁 받은 묵상을 댓글로 나눠 주세요.
「쉼표 묵상」 6차 연작 「머무는 사람」은 고요함 — 뿌리내림 — 품어냄으로 이어집니다. (17편 · 6차 아크 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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