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린 날이었습니다. 창 앞에 금빛 줄 커튼이 촘촘히 드리워 있어 바깥도 안쪽도 또렷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줄 사이로 붉은 불빛이 새어 나왔습니다. 낮고 넓게, 소리 없이 타오르는 불이었습니다.
저도 흐린 길을 걸은 적이 있습니다. 주님이 멀리 계신 것 같았고, 기도는 허공에 머무는 듯했습니다.
눈앞을 가린 것이 너무 많아서, 그 너머에 무엇이 타고 있는지 보지 못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엠마오로 가는 길을 함께 걸으면서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던 두 제자가, 떡을 떼어 주신 주님이 보이지 않게 되신 뒤 서로에게 한 고백입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누가복음 24:32
그들의 눈은 가려져 있었지만 주님은 끝까지 곁에서 걸으셨습니다. 보이지 않았을 뿐, 말씀은 그 길 위에서 이미 그들의 마음을 덥히고 있었습니다.
말씀이 풀릴 때 마음이 먼저 뜨거워집니다. 깨달음은 늦게 와도, 주님의 동행은 늦은 적이 없습니다.
가려진 줄 너머에도 불은 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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