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묵상 ㉖
— 미끄러진 하루에도 붙드시는 손

회의실 공기가 순간 식어 버린 날이 있었습니다.

제가 넘긴 자료에 큰 실수가 있었습니다.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지만, 그 장면은 퇴근길 내내 머릿속에서 계속 되감깁니다. 비 오는 계단에서 난간을 붙잡으며 생각했습니다. 오늘 나는 크게 미끄러졌구나.

시편 94편의 시인도 미끄러지는 사람이었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이 오만하게 떠들고, 과부와 나그네와 고아가 죽임을 당하는 시대였습니다(시 94:4-6). 정의가 보이지 않는 그 땅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고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 시편 94:18,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시인은 미끄러지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발이 미끄러진다고 정직하게 씁니다. 신앙은 넘어지지 않는 기술이 아니라, 넘어지는 순간에 무엇이 나를 붙드는지 아는 지식입니다. 그를 붙든 것은 자기 균형 감각이 아니라 주의 인자하심이었습니다.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 시편 94:19,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미끄러진 다음에는 근심이 따라옵니다. 실수는 한 번인데 근심은 밤새 반복됩니다. 시인은 바로 그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영혼을 즐겁게 한다고 말합니다. 근심이 줄어든 뒤가 아니라, 근심이 가장 많은 그때입니다.

여기 하나님의 성품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넘어진 자녀가 스스로 일어선 뒤에야 다가오시는 분이 아니라, 미끄러지는 그 순간에 이미 손을 내밀고 계신 분입니다. 그 손의 이름이 인자하심입니다.

오늘의 실수가 당신의 이름은 아닙니다.

미끄러진 자리에도, 붙드시는 손이 먼저 와 있습니다.

함께 묵상할 질문

  1. 오늘 나를 가장 오래 붙잡고 있는 실수의 장면은 무엇입니까?
  2. 근심이 많은 지금, 주의 위안을 구하는 기도를 한 문장으로 적는다면 무엇입니까?

당신의 묵상을 댓글로 이어 주세요.

「쉼표 묵상」 소연작 「하루를 아시는 분」은 귀가 — 아심 — 붙드심 — 기억함 — 평강으로 이어지며, 하루를 마친 손이 하나님의 손에 닿는 흐름입니다. (26편 · 소연작의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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