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하러 가는 길에 할 말을 몇 번이나 고쳐 본 적이 있습니까?
저는 있습니다. 첫 문장을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변명처럼 들리면 어쩌나, 너무 가볍게 들리면 어쩌나. 그렇게 준비하다 보면 정작 발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말이 완성되지 않았으니 아직 갈 때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붙잡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의 둘째 아들도 대사를 준비했습니다. 아버지 앞에서 할 말을 미리 정해 두었습니다. 더는 아들이라 불릴 자격이 없으니 품꾼의 하나로 보아 달라는 말이었습니다(눅 15:18-19). 그리고 그는 일어나 길을 나섭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 누가복음 15:20,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본문의 순서를 천천히 보십시오. 아들은 아직 거리가 먼 곳에 있습니다. 준비한 말은 한 마디도 꺼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먼저 봅니다. 먼저 측은히 여깁니다. 먼저 달려갑니다. 그리고 목을 안고 입을 맞춥니다. 아들의 고백은 그다음입니다(눅 15:21).
우리는 완성된 회개를 들고 가야 받아 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먼저 보신 것은 잘 다듬은 문장이 아니었습니다. 집 쪽으로 돌아선 방향이었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성품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다리시는 분이고, 기다리다 끝내 달려 나오시는 분입니다. 체면보다 긍휼이 앞서는 아버지입니다. 거리가 먼 것은 아들의 사정이었지만, 그 거리를 좁힌 것은 아버지의 발이었습니다.
그러니 오늘 밤 할 말이 다 준비되지 않았다고 멈춰 서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방향만 돌리십시오. 나머지 거리는 아버지가 달려오십니다.
함께 묵상할 질문
- 하나님께 나아가기 전에 할 말이 다 준비되어야 한다며 미뤄 두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 오늘 밤 내가 돌려야 할 방향은 어느 쪽입니까?
「쉼표 묵상」 5차 연작 「돌아오는 자리」는 돌아섬 — 기다림 — 맞이함으로 이어집니다. (14편) 함께 읽기: 쉼표 묵상 ⑬ —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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