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알아요.”
우리는 이 말을 쉽게 합니다. 이름과 직업, 몇 번 나눈 대화 정도면 안다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안다는 것은 대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의 원어
יָדַע
야다
관계 안에서 깊이 아는 앎
히브리어 야다는 다릅니다. 머리에 쌓는 지식보다 삶으로 겪는 앎에 가깝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은 부부가 서로를 아는 친밀함에도 이 단어를 씁니다(창 4:1). 그리고 하나님이 사람을 아시는 일에도 이 단어를 씁니다. 겉을 훑어보는 앎이 아니라 깊이 들여다보고 품는 앎입니다.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부름을 받던 날, 그는 자신이 아이라서 말할 줄 모른다고 물러섰습니다(렘 1:6). 하나님은 그의 자격을 따지기 전에 먼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 예레미야 1:5,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순서를 보십시오. 짓기 전에 아셨고, 나오기 전에 구별하셨고, 그다음에 세우셨습니다. 예레미야가 무엇을 해내기 전에 하나님의 앎이 먼저 있었습니다. 그 앎은 정보 수집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품고 계셨다는 뜻이었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성품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멀리서 관찰하시는 분이 아니라 가까이서 아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설명하기 전에 이미 아시고, 우리가 감추고 싶은 부분까지 아시면서도 떠나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앎은 판결이기 전에 사랑입니다.
오늘 아침, 누구에게도 다 설명하지 못한 마음이 있다면 그것까지 아시는 분 앞에 서십시오.
하나님이 당신을 야다하십니다. 그 앎 안에 지금 서 있습니까?
함께 묵상할 질문
- 나는 하나님을 정보로만 알고, 관계로 알아 가는 시간을 놓치고 있지 않습니까?
- 오늘 하나님 앞에 설명하지 않고 그대로 내놓을 마음은 무엇입니까?
「말씀 원액」은 아침마다 새로운 말씀 원액 한 방울 — 원어 한 단어로 하루를 여는 짧은 묵상입니다. (16편 · 야다) 함께 읽기: 말씀 원액 ③ — 메노, 방문이 아니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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