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원액 ⑱
— 파레시아, 그리스도 안에서 허락된 담대함

담대하라,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아마 이를 악물고 주먹을 쥐는 모습일 것입니다. 떨리는 마음을 누르고 용기를 쥐어짜는 일입니다. 그래서 담대함은 타고난 배짱이 있는 사람의 몫처럼 느껴집니다. 겁이 많은 사람은 처음부터 자격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원어

παρρησία

파레시아

숨기지 않고 나아가는 담대함

헬라어 · 에베소서 3:12

헬라어 파레시아는 ‘모두’를 뜻하는 말과 ‘말함’을 뜻하는 말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모든 것을 말한다, 곧 숨기지 않고 터놓고 말한다는 뜻입니다. 고대 아테네에서 이 말은 시민이 민회에서 거리낌 없이 발언할 수 있는 자격을 가리키기도 했습니다. 아무나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속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권리였습니다.

바울은 갇힌 몸으로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쓰며 이 단어를 꺼냅니다(엡 3:1). 갇힌 사람이 담대함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담대함의 출처는 자기 자신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 에베소서 3:12,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순서를 보십시오.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다음에 담대함입니다. 담대함은 내가 끌어올린 감정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자격입니다. 하나님 앞에 숨기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권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히브리서도 같은 단어로 우리를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라고 부릅니다(히 4:16).

여기 하나님의 성품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떨지 않는 사람만 받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아들 안에서 먼저 문을 여시고, 우리가 아무것도 숨길 필요 없이 나아오도록 길을 내신 분입니다. 담대함의 출처가 나라면 금방 바닥납니다. 그러나 출처가 그리스도라면, 우리가 흔들리는 날에도 그 문은 닫히지 않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공회 앞에서 담대하게 말했을 때, 사람들은 그들을 배운 것 없는 평범한 사람으로 알았기에 이상히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와 함께 있던 사람들임을 알아보았습니다(행 4:13). 그들의 파레시아는 학식이나 기질에서 오지 않았습니다. 예수와 함께 있었다는 데서 왔습니다.

그러니 마음이 떨리는 날, 담대함이 없다고 물러서지 마십시오. 떨지 않는 것이 담대함이 아닙니다. 떨리는 채로 그리스도 안에서 열린 문을 지나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 그것이 파레시아입니다.

쥔 주먹을 펴십시오. 문은 이미 열려 있습니다.

함께 묵상할 질문

  1. 나는 담대함을 내 기질과 배짱의 문제로만 여기고 있지 않습니까?
  2. 오늘 숨기지 않고 하나님께 그대로 말씀드릴 것은 무엇입니까?

「말씀 원액」은 아침마다 새로운 말씀 원액 한 방울 — 원어 한 단어로 하루를 여는 짧은 묵상입니다. (18편 · 파레시아) 함께 읽기: 말씀 원액 ⑯ — 야다, 아는 것은 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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