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좋다, 하면 누가 떠오르십니까.
아마 흔들림 없이 확신에 찬 얼굴일 것입니다. 기도하면 눈물이 나고, 의심 한 번 품어 본 적 없을 것 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믿음을 감정의 온도로 잽니다. 그래서 마음이 식는 날이면 믿음도 함께 사라진 것 같아 불안해집니다.
오늘의 원어
אֱמוּנָה
에무나
흔들리면서도 자리를 지키는 견고함
히브리어 에무나는 ‘아멘’과 뿌리가 같습니다. 굳게 서다, 붙들어 주다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에무나는 뜨거운 감정보다 단단한 자세에 가깝습니다. 아말렉과 싸우던 날, 모세의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않았다고 성경은 말합니다(출 17:12). 그 내려오지 않은 손을 묘사하는 히브리어가 바로 에무나입니다. 그런데 그 손은 혼자 버틴 손이 아니었습니다. 아론과 훌이 양쪽에서 붙들어 주었습니다.
하박국은 무너지는 시대에 서 있었습니다. 불의는 커져 가는데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따지듯 묻고, 파수하는 곳에 올라 응답을 기다렸습니다(합 2:1). 하나님의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하박국 2:4,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교만한 자는 제 힘으로 섭니다. 의인은 다르게 섭니다. 확신이 넘쳐서가 아니라, 응답이 더디게 느껴지는 시간에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기에 삽니다. 바울은 이 한 구절을 복음의 한가운데에 다시 세웠습니다(롬 1:17).
여기 하나님의 성품이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 자신을 말할 때에도 이 단어를 씁니다(신 32:4). 우리의 에무나가 흔들릴 때에도 하나님의 에무나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붙잡는 힘보다 그분이 우리를 붙드시는 신실하심이 먼저입니다. 그 신실하심의 끝에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우리 대신 끝까지 자리를 지키신 분입니다.
그러니 마음이 흔들리는 날, 믿음이 없다고 결론 내리지 마십시오. 의심이 없는 상태가 믿음이 아닙니다. 흔들리면서도 그 자리를 지키는 것, 그것이 에무나입니다.
흔들리는 손도 붙들려 있으면 내려오지 않습니다.
함께 묵상할 질문
- 나는 믿음을 감정의 온도로 재면서 스스로를 판단하고 있지 않습니까?
- 오늘 흔들리면서도 떠나지 말아야 할 자리는 어디입니까?
「말씀 원액」은 아침마다 새로운 말씀 원액 한 방울 — 원어 한 단어로 하루를 여는 짧은 묵상입니다. (17편 · 에무나) 함께 읽기: 말씀 원액 ⑥ — 아멘, 마침표가 아니라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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