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위로한다,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아마 곁에 앉아 고개를 끄덕여 주는 모습일 것입니다. 많이 힘들었겠다, 네 마음 안다, 하는 말들입니다. 그 공감은 소중합니다. 그런데 한참 울고 난 뒤에도 그 자리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는 날이 있습니다. 마음은 알아주었는데 길은 여전히 막혀 있는 날입니다.
오늘의 원어
נָחַם
나함
숨을 돌려 방향을 바꾸게 하는 위로
히브리어 나함은 ‘숨을 깊이 들이쉬다, 방향을 돌이키다’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단어가 성경에서 ‘위로하다’로도, ‘뜻을 돌이키다’로도 옮겨집니다. 니느웨가 악한 길에서 돌이켰을 때 하나님께서 내리려던 재앙에 대해 뜻을 돌이키셨다는 장면에도 이 단어가 쓰였습니다(욘 3:10). 나함은 감정에 머무는 말이 아니라 방향이 바뀌는 말입니다.
이사야 40장은 무너진 백성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앞의 39장은 나라가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될 것이라는 예고로 끝납니다. 성전도, 성읍도, 왕조도 무너질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가장 먼저 꺼내신 말씀이 이것이었습니다.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 이사야 40:1,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위로하라는 말이 두 번 거듭됩니다. 그리고 그 위로는 다정한 맞장구로 끝나지 않습니다. 바로 다음 구절은 고난의 때가 끝났고 죄악이 사함을 받았다고 선언하며(사 40:2), 이어서 광야에 길을 내라고 외칩니다(사 40:3). 하나님의 위로는 우는 자리에 함께 앉아 주시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갈 길을 여십니다.
여기 하나님의 성품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무너짐을 모른 척하지 않으시고, 그렇다고 무너진 채로 내버려 두지도 않으시는 분입니다. 이사야 40장이 예고한 광야의 외침은 세례 요한을 거쳐 그리스도께로 이어집니다(막 1:2-3). 그리스도는 우리의 슬픔을 아시는 분일 뿐 아니라, 우리를 죄와 절망의 자리에서 돌이켜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 되신 분입니다.
그러니 지친 날, 위로를 그저 ‘알아주는 말’로만 기다리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위로는 “그래, 힘들었겠다”로 끝나지 않습니다. 깊은 숨을 다시 쉬게 하시고, 고개를 들어 다른 방향을 보게 하십니다.
숨을 돌려 다시 서게 하는 것, 그것이 나함입니다.
함께 묵상할 질문
- 나는 위로를 마음을 알아주는 것으로만 여기고 있지 않습니까?
- 오늘 하나님의 위로 안에서 숨을 돌려 방향을 바꿔야 할 자리는 어디입니까?
「말씀 원액」은 아침마다 새로운 말씀 원액 한 방울 — 원어 한 단어로 하루를 여는 짧은 묵상입니다. (19편 · 나함) 함께 읽기: 말씀 원액 ⑰ — 에무나, 흔들리면서도 서 있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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