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누군가를 안고 버티셨습니까.
잠투정하는 아이일 수도 있고, 말없이 무너져 가는 동료일 수도 있습니다. 병상에 계신 부모님일 수도 있고, 사실은 흔들리는 나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품는 사람의 팔은 저녁이 되면 저려 옵니다. 그런데 품는 사람일수록 정작 자기를 안아 줄 품은 잘 찾지 않습니다.
이사야 40장은 무너질 백성에게 건네진 위로입니다.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 40:1)로 시작한 말씀은 곧이어 사람이 풀과 같고 그 아름다움이 들의 꽃과 같다고 말합니다(사 40:6). 사람은 시듭니다. 품는 사람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 고백 뒤에서 이사야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 줍니다.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 이사야 40:11, 개역개정 ⓒ대한성서공회
바로 앞 절은 주 여호와께서 강한 자로 임하시고 그 팔로 친히 다스리신다고 말합니다(사 40:10). 다스리시는 그 팔이 다음 절에서 어린 양을 모으는 팔이 됩니다. 능력의 팔과 품는 팔이 같은 팔입니다. 이 구절은 이어서 목자가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온순히 인도한다고 말합니다. 새끼를 돌보느라 걸음이 느려진 양을 목자는 재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 이 구절은 두 사람에게 함께 닿습니다. 품에 안긴 어린 양에게, 그리고 누군가를 돌보느라 지친 어미 양에게. 품어내는 사람도 누군가의 품 안에 있습니다. 다 안지 못했다고 자책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당신이 안은 것들을 하나님이 함께 안고 계셨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성품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강하시지만 그 강함을 멀리서 휘두르지 않으십니다. 가장 약한 것부터 팔로 모으시는 분입니다. 이 목자의 얼굴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났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선한 목자라 부르시고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습니다(요 10:11). 우리를 안으시는 그 팔에는 십자가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안기는 것은 약함이 아닙니다. 그것도 머무는 일입니다. 고요히 멈추고, 물가에 뿌리를 내리고, 이제 그 품에 안기는 것. 「머무는 사람」의 마지막 걸음입니다.
오늘 밤은, 당신이 안길 차례입니다. ……
함께 묵상할 질문
- 오늘 내가 품고 버틴 사람이나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 나는 왜 하나님께 안기는 것을 어려워합니까?
오늘 저녁 받은 묵상을 댓글로 나눠 주세요.
「쉼표 묵상」 6차 연작 「머무는 사람」은 고요함 — 뿌리내림 — 품어냄으로 이어집니다. (18편 · 6차 아크 완결) 함께 읽기: 말씀 원액 ⑲ — 나함, 숨을 돌려 다시 서게 하는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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